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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한 마음

이 블로그는 오롯이 나를 위한 공간이다. 그래서 이 공간에 기술과 개발에 관한 이야기 이외에 개인적인 글도 많이 남겨보려 한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을 글로 남기는 거에 익숙하지 않아서 이게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책을 자주 읽고 있다(아니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 더 적합하려나?). 개발 서적을 제외하고 직접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비는 시간만 있으면 맨날천날 핸드폰만 붙잡고 슬롯머신 당기듯 무의미하게 피드 업데이트나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꼴 보기가 싫어서 다른 집중할 만 한 걸 찾은 게 책이다. 아마 이전 같았으면 예능이나 넷플릭스 같은 걸 볼텐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영상을 집중해서 오래 보기가 어렵다. 알록달록한 화면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오히려 불쾌하게 느껴졌다.

음 어릴 적에는 책을 고르면 주로 추리소설을 골라 읽었다. 마지막 반전이 딱! 범인이 짠! 하면 헉! 하면서 머리가 띵해지는 충격이 좋았다. 뭐 꼭 추리소설이 아니어도 주로 소설책을 골랐다. 그때의 나는 수필류의 글을 기승전결도 없이 밍숭맹숭한 글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손이 잘 안 갔던 것 같다. 딱히 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요즘 골라 읽는 책은 다 에세이다. 읽고 싶은 책 목록에도 에세이나 인문학책을 위주로 담아놨다. 요즘은 수필이 무엇인가 특별히 말하고자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서 좋다. 단어 이면에 숨어 있는 뜻을 찾으려 노력할 필요도 없고 글자는 그냥 글자로 읽으면 된다. (작가는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게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단순하게 읽고 있다.)

그냥… 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글은 다른 어떤 것들에 비해서 더 솔직한 느낌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SNS에 올려둔 백 장의 사진을 보는 것보다 진솔하게 쓰인 한 편의 글을 보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은, 글자는 그런 힘이 있다. 꼭 타인에게 읽혀지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어도 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개인적인 생각을 글로 잘 남기지 않는 편이었다. 만약 내가 글을 남긴다고 하면 크게 둘 중 하나의 공간 일 텐데 하나는 SNS같이 지인들 그리고 불특정 다수가 내 글을 볼 수 있는 공간 이거나 아니면 나 혼자만 볼 수 있는 일기장이거나?

SNS같이 공개된 곳은 정말 의식적으로 개인적인 생각 남기기를 꺼렸다. 글재주가 없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쓰지도 못할 것 같았고 내 속내를 까 보일 진짜 솔직한 글을 쓸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발라내고 나면 결국 남는건 밑도 끝도 없이 ’아 힘들다’ 식의 궁금증 유발형 관종 글이 탄생하고 마는데 이건 더더욱 쓰고 싶지 않았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타인의 글에 별 관심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그러면 그냥 내 일기장에 혼자 쓰고 혼자 보면 될 일인데 나는 그것도 잘 안 했다. 귀찮음이 가장 큰 이유긴 했지만서도 아마 혼자 보는 글도 쓰지 않은 이유는, 사실은, 아주 모순적이게도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 주길 간절히 바랬기 때문이다. 아주 솔직하게 그렇다.

마음속 깊이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기를, 나에게 물어주기를, 나를 읽어 주기를 무척이나 바랬다. 그냥 피드 속에 흘러가는 글이 아니라 나를 진심으로 알고 싶어 하기를, 그러면 나는 진솔한 나를 차근차근 꺼내 보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그리고 내가 바랬듯이 너를 궁금해하고 너에게 묻고 너를 아주 샅샅이 읽어주어야지 하고,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알아주겠다고

지금도 이 모순적이고 유치한 마음을 지우지 못해서 이곳에 글을 쓰는 거다. 여기는 오롯이 나를 위한 공간이고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곳이니까. 간혹 우연은 있을 수 있겠지만서도.

누가 이 글을 보아줄까? 어떤 이유로 이 글을 보게 되었을까?

지금 내 속내를 까 보이자면, 정말 솔직하게 요즘의 나는 너무 많이 힘들고, 엉망이다. 수없이 발버둥 치며 지내고 있다.
지낸다기보다 버틴다는 말이 더 정확할 만큼.